휴지는 앞으로 걸까, 뒤로 걸까? | 두루마리 휴지 특허 이야기

특허로 읽는 발명 이야기 · No.001 · 우리 집

화장실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를 떠올려 보세요. 휴지 끝이 앞쪽으로 늘어져 있나요, 아니면 벽 쪽으로 숨어 있나요?

별것 아닌 질문 같지만, 이 문제로 다툰 사람이 정말 많아요. 미국의 유명한 고민 상담 칼럼니스트 앤 랜더스가 이 이야기를 신문에 실었더니 편지가 무려 1만 5천 통이나 왔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논쟁에 힌트를 주는 '공식 문서'가 있어요. 바로 1891년에 등록된 두루마리 휴지 특허예요.

휴지가 없던 시절

휴지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무엇을 썼을까요? 나뭇잎, 풀, 헝겊, 옥수수 속대, 그리고 다 읽은 신문지나 책장까지 썼어요. 종이를 일찍 만든 중국에서는 6세기 무렵부터 뒤처리에 종이를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미국에서 '화장실 전용 종이'를 처음 상품으로 판 사람은 1857년의 조지프 가예티예요. 하지만 이 휴지는 두루마리가 아니라 낱장을 상자에 담은 것이었어요. 한 장씩 꺼내 써야 했고, 값도 비쌌지요.

종이를 둘둘 만 사람, 세스 휠러

미국 뉴욕주 앨버니에 살던 세스 휠러는 종이 제품을 연구하던 발명가예요. 그는 종이를 길게 이어 둘둘 감고, 쓸 만큼만 뜯어 쓰면 편하겠다고 생각했어요. 1871년에 종이에 자르는 칸을 넣는 방법으로 특허를 신청했고, 1883년에는 가운데 심에 감은 두루마리 휴지로 특허를 받았어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어요. 휴지가 깔끔하게 안 뜯어진다는 거예요.

특허 들여다보기

특허번호미국 특허 제465,588호
이름Toilet-paper roll (두루마리 화장지)
발명자세스 휠러 (Seth Wheeler, 미국)
출원 → 등록1891년 6월 8일 → 1891년 12월 22일
원문Google Patents에서 보기

휠러는 특허 설명서에 예전 두루마리의 문제를 솔직하게 적었어요.

  • 종이를 감을 때 끊어지지 않으려면 칸과 칸의 연결이 튼튼해야 해요.
  • 그런데 쓸 때는 연결이 약해야 쉽게 뜯기지요.
  • 연결 부분에 칼집을 내 봐도, 정해진 방향으로 당겨야만 잘 뜯겼어요.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쓰며 휴지를 뜯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 그래서 찢어진 자리가 옆으로 새면서 다음 장까지 찢어지는 일이 많았어요.
휠러는 '자르는 선'을 어떻게 바꿨을까?예전 두루마리특허 설명서가 말한 문제위 칸아래 칸 (다음 장)짧은 칼집 + 넓고 튼튼한 연결찢어짐이 옆으로새서 다음 장까지!휠러의 두루마리1891년 특허의 해결책위 칸아래 칸 (다음 장)여기만 살짝 연결가운데 다리만 톡!다음 장은 멀쩡→

휠러의 해결책은 이랬어요. 칼집을 종이 양쪽 가장자리에서 가운데 쪽으로 길게 넣고, 가운데에는 아주 작은 다리 하나만 남기는 거예요. 칼집 끝은 비스듬히 꺾어서, 찢어지는 방향이 옆으로 새지 않고 가운데로 모이게 했어요. 그러면 한 장을 당기면 작은 다리만 '톡' 끊어지고, 다음 장은 멀쩡하게 남아요.

휠러의 두루마리 휴지 (1891)미국 특허 제465,588호 도면을 입체로 다시 그림①두루마리휴지를 감은 뭉치⑤종이 심가운데 통②한 장휴지 한 칸③양쪽 칼집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④가운데 작은 다리여기만 살짝 붙어 있어요

청구항 한 줄 풀이
"종이 두루마리를 가장자리에서 가운데 쪽으로 낸 칼집으로 칸을 나누고, 칸과 칸은 ∧ 모양의 작은 혀로만 이어 놓은 것."
특허에서 지키고 싶은 핵심을 적은 문장을 '청구항'이라고 해요. 이 특허의 청구항은 딱 한 문장이에요.

특허 설명서에는 재미있는 설명이 하나 더 있어요. 자르는 선을 둥글고 톱니 모양으로 만들면 휴지 끝을 찾기 쉽고, 손으로 잡기도 쉽다는 거예요. 휴지 끝을 못 찾아서 두루마리를 빙빙 돌려 본 적 있다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미국 특허 제465,588호 원본 도면

미국 특허 제465,588호 원본 도면 (출처: Google Patents)

그래서, 앞으로? 뒤로?

원본 도면(그림 1)을 다시 보세요. 휴지가 두루마리 위로 넘어와 앞쪽으로 늘어져 있지요? 발명가 본인이 그린 그림에서는 '앞으로 걸기'였던 셈이에요. 여러 설문 조사에서도 열 명 중 일곱 명쯤이 앞으로 거는 쪽을 골랐다고 해요.

앞으로 걸까, 뒤로 걸까? (옆에서 본 모습)벽끝이 벽에서멀리, 앞쪽에앞으로 걸기특허 그림은 이쪽!벽끝이 벽 쪽에붙어서 숨음뒤로 걸기

물론 뒤로 거는 쪽도 이유가 있어요. 끝이 숨어 있어 깔끔해 보이고, 고양이나 어린 동생이 휴지를 마구 풀어 버리는 것도 줄일 수 있대요. 앞으로 거는 쪽은 끝을 찾기 쉽고, 손이 벽에 닿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정답은 없지만, 이제 여러분은 "원래 특허 그림은 앞으로였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휠러의 특허 기간이 끝난 뒤에는 누구나 이 방법으로 휴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 집 휴지에도 자르는 선이 들어 있는 거예요.

발명 기법 카드

빼기 — 칸과 칸을 잇는 부분을 확 줄여 작은 다리 하나만 남겼어요.
모양 바꾸기 — 칼집 끝을 비스듬히 꺾어서 찢어지는 방향을 바꿨어요.

생각해 보기

질문 우리 집 화장실 휴지는 앞으로 걸려 있나요, 뒤로 걸려 있나요? 가족 투표를 해 보세요.

도전 과제 A4 종이 두 장을 길게 잘라 실험해 보세요. 한 장은 가로로 짧은 칼집을 여러 개 내고, 다른 한 장은 휠러처럼 양쪽에서 가운데로 칼집을 내고 가운데만 1cm 남겨 보세요. 어느 쪽이 더 깔끔하게 뜯어지나요?

다음 편 예고 단추 대신 '지익' 한 번에 닫히는 비밀, 지퍼 특허를 열어 봐요.

참고: 미국 특허 US465,588 원문(Google Patents), 위키백과 'Toilet paper', 'Toilet paper orientation'. 그림은 특허 도면을 바탕으로 새로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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